포레스트 검프- 댄 중위 관점에서 감상하기

2023. 1. 16. 12:26영화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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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봤던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와챠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20대에 본 영화를 50이 넘어 보게 되니 예전에 느꼈던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영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작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전쟁을 예전보다 좀 더 가까이 인식하게 되면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었던 포레스트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특히 영화에서 가장 안타깝기도 하고 마음이 많이 갔던 인물은 댄 테일러 중위(배우 게리 시니즈)이었다.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두 전사한 집안 내력을 가진 댄 중위는 어쩌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자신도 전사할 운명이라는 두려움을 누구보다 많이 가졌을 것이다. 전장에서 두 다리를 다친 그를 포레스트 검프가 살려주고 병원에서 결국 두 다리를 절단했을 때 그가 느낀 절망감은 상상조차 힘들다.

그는 포레스트에게 찾아와 "사람은 누구에게나 예정된 운명이 있는데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죽는 것이 내 운명이었다. 그런데 네가 나의 운명을 갈취해 버렸다." 며 절규한다. "날 봐, 난 이제 뭘 해야 하지?"라며 침통해하는 그의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포레스트 입장에서 보면 물론 물에 빠진 걸 살려 놨더니 보퉁이 내놓으라고 하는 격이지만, 중위의 입장에서 두 다리 없이 살아갈 자신의 처지는 오히려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절망이었을 것이다.

댄 중위는 탁구로 일약 스타가 되어 중국까지 갔다 온 포레스트가 TV에 출연한 후, 포레스트를 만나 "너 같은 백지 멍청이에게 무공 훈장을 주다니! 빌어먹을 미국!"이라며 막말을 한다.

댄 중위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정부에서 받는 연금으로 술만 마시며 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다. 신이 있다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종교적인 위로도 그에겐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수를 믿고 나중에 천국에서 주와 함께 걸을 수 있다'는 재향군인회 사람들의 말도 절망에 빠진 그에게는 헛웃음만 나는 빈 말에 지나지 않았다.
포레스트는 댄 중위에게 전쟁터에서 죽은 '버바'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우잡이 배의 선장이 되겠다고 한다.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던 댄 중위는 장난으로 그럼 자신이 1등 항해사가 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장난 같았던 말은 현실이 된다. 포레스트는 전역 후 탁구채 광고를 하고 받은 돈으로 새우잡이 배를 사서 진짜 선장이 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댄 중위는 포레스트를 찾아오고 약속대로 1등 항해사가 된다. 새우를 많이 잡기 위해 기도를 하라는 댄 중위. 어쩌면 댄 중위는 가장 순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폭풍이 치는 날, 돛 대위에서 폭풍과 직면하며 자신을 잡아가 보라며 미친 듯이 소리지르던 댄 중위는 그날 자신의 운명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포레스트는 신이 댄 중위에게 나타났다는 표현과 신과 화해한 것 같다는표현을 썼다. 자신의 의지 대로 되지 않는 삶에 대한 분노와 더 큰 시련 앞에 당당하게 맞서겠다는 의지를 통해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바다 한 가운데서 폭풍과 싸웠던 포레스트의 배는 폭풍 속에서도 건재했지만, 폭풍을 피해 항구에 정박해 두었던 다른 새우잡이 배들이 모두 난파당한다. 이 바람에 포레스트와 댄 중위는 새우를 많이 잡게 되고 일이 잘 풀리게 되며 평화를 찾게 된다. 댄 중위는 포레스트에게 한 번도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며 바다로 뛰어들어 유유히 헤엄을 친다.

이후 이들의 새우잡이 사업은 대성공을 하고 댄 중위는 번 돈을 애플에 투자하여 억만장자가 된다. 그리고 포레스트에게도 정확히 배분을 하게 된다.

포레스트가 우여곡절 끝에 제니와 결혼하던 날, 댄 중위는 휠체어에 앉은 모습이 아니라 의족으로 당당히 걸어서 약혼자와 함께 결혼식에 나타나 프레스트를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 포레스트의 결혼식을 서서 지켜보던 댄 중위의 모습에 영화의 관객들은 모두 안도했을 것이다.

어쩌면 댄 중위는 그 전의 처절했던 절망 속에서의 방황을 딛고 새로운 삶을 얻은 것이기에 더 감사하며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우리도 우리의 바람과 의지 대로 인생이 순탄하게 흐르지 않아 좌절하고 원망하며 살 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의 오늘의 모습만으로 절망하고 그것에 빠진 삶을 합리화시키는 것은 어쩌면 이후에 있을 더 큰 아름다운 삶을 거부하는 어리석은 모습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댄 중위가 어리석은 포레스트의 말을 무시하고 새우잡이 배의 포레스트를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의 삶은 비참하게 끝이 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구렁텅이에서 나온 그 한 발자국이 그의 삶을 바꿀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끝이 없는 절망의 터널이라도 끝은 있게 마련이다. 우선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이와 다른 미래를 꿈꾸는 것. 그리고 그 희망을 위한 작은 노력이라도 해 보는 것.
어쩌면 신이 우리를 통해 계획하고 그려내는 멋진 큰 그림은 우리가 인생을 마무리 할 때에야 비로소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포기하지 말고 그 안에서의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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