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감상(16)
-
딸기(이재무) 감상 및 정리
딸기 이재무 오십 리 길 짐차에 실려 왔어유 멀미도 가시기 전에 낯선 거리 쏴댕기면서 지 몸 살 사람 찾고 있지유 목마름은 이냥저냥 견딜 수 있슈 헌디, 볼기짝 쥐어뜯으며 살결이 거칠다느니 단맛이 무르다느니 허진 말어유 지 몸이 그냥 지 몸인가유 이만한 몸띵이 하나 살리기 위해서도 하느님 손 농부 손 고루 탔어유 그러니께 지폐 한 장으루다 우리 식구 사돈에 팔촌까지 두루 사 가는 선상님들 몸값이나 후하게 쳐주셔야겠슈 감상 이 시는 딸기를 의인화하여 딸기가 딸기를 사려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재미있는 시이다.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하여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딸기는 오십 리 먼 길을 멀미를 하며 짐차에 실려오느라 살결이 거칠고 단맛이 물러졌지만 이래 봬도 자신은 하느님 손 농부 손 고루 탔다고 말한다. 즉 ‘..
2023.02.07 -
상처가 더 꽃이다(유안진) 감상 및 정리
상처가 더 꽃이다 유안진 어린 매화나무는 꽃 피느라 한창이고 사백 년 고목은 꽃 지느라 한창인데 구경꾼들 고목에 더 몰려섰다 둥치도 가지도 꺾이고 구부러지고 휘어졌다 갈라지고 뒤틀리고 터지고 또 튀어나왔다 진물은 얼마나 오래 고여 흐르다가 말라붙었는지 주먹만큼 굵다란 혹이며 패인 구멍들이 험상궂다 거무죽죽한 혹도 구멍도 모양 굵기 깊이 빛깔이 다 다르다 새 진물이 번지는가 개미들 바삐 오르내려도 의연하고 의젓하다 사군자 중 으뜸답다 꽃구경이 아니라 상처 구경이다 상처 깊은 이들에게는 훈장(勳章)으로 보이는가 상처 도지는 이들에게는 부적(符籍)으로 보이는가 백 년 못 된 사람이 매화 사백 년의 상처를 헤아리랴마는 진동하겠지 상처의 향기 상처야말로 더 꽃인 것을. '봄바람 흩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2023.02.01 -
박남수, 아침 이미지1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을 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어둠과 아침이라는 일상적인 대상을 주제로 그것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그려 아침의 생동감 넘치는 풍경을 표현해 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어둠’은 시련이나 고통 등의 부정적 의미를 지니지만 이 시에서는 생명을 잉태한 건강한 이미지로 보고 있다. 아침이 되어 빛 가운데 드러난 세상의 만물들은 어둠이 낳은 것으로, 태양의 축복을 받으며 즐겁고, 힘차고, 기쁨에 넘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2행) 어둠의 생..
2023.01.24 -
향수(정지용) 감상 및 정리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
2023.01.21 -
마종하 '딸을 위한 시'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 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 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라고.’ 사람들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사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녀에게 공부 열심히 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고 말하지만 시인은 주변을 잘 관찰하라고 조언을 한다.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는지 자연에 관심을 갖고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며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찾아 배려하는 삶을 살라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천천히 주변을 관찰하고 돌아보며 함께 가는 삶이 더 필요한 세상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
2023.01.18 -
멧새 소리(백석)
멧새 소리 백석 처마 끝에 명태(明太)를 말린다 명태(明太)는 꽁꽁 얼었다 명태(明太)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明太)다 문(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정끝별 '시 읽기의 네 갈래 길 ' 이 시는 백석의 여러 시 중 드물게 짧고 간결한 시다. 시는 어느 집 처마 끝에 고드름을 매단 채 꽁꽁 얼어붙어 있는 명태를 그리고 있다. 명태는 기다란 데다 얼기까지 했고, 꼬리에 기다란 고드름을 매달고 있어서 더더욱 파리해 보인다. 게다가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간 저물녘의 겨울 볕이니 서럽도록 차갑기도 할 것이다. ‘볕이 차갑다’라는 모순되는 감각의 이미지는 이런 맥락에서 생성되었다..
2023.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