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새 소리(백석)

2023. 1. 17. 21:24시 감상

728x90
반응형

멧새 소리

                                                                 백석

 

 

처마 끝에 명태(明太)를 말린다

 

명태(明太)는 꽁꽁 얼었다

 

명태(明太)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明太)

 

()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처마 끝 고드름
명태 말리기

<감상> 정끝별 '시 읽기의 네 갈래 길 '

이 시는 백석의 여러 시 중 드물게 짧고 간결한 시다. 시는 어느 집 처마 끝에 고드름을 매단 채 꽁꽁 얼어붙어 있는 명태를 그리고 있다. 명태는 기다란 데다 얼기까지 했고, 꼬리에 기다란 고드름을 매달고 있어서 더더욱 파리해 보인다. 게다가 해는 저물고 날은 다간 저물녘의 겨울 볕이니 서럽도록 차갑기도 할 것이다. ‘볕이 차갑다라는 모순되는 감각의 이미지는 이런 맥락에서 생성되었다. 한 컷의 흑백 사진을 보는 듯한 탁월한 이미지이다.

이 시의 놀라움은 제목 멧새 소리에서 나온다. 시 본문에는 멧새 소리는커녕 멧새의 흔적조차 나오지 않는다. 명태의 시각적 묘사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시를 다 읽고 나면, 왜 제목이 멧새 소리일지 한참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 멧새 소리는 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길다랗고 파리한명태의 시각적 이미지에 깨끗하고 맑은 청각적 울림을 더해 줄 뿐 아니라, 시의 의미를 풍요롭게 해 준다.

상상해 보자. 멧새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집 주변에 인적이나 인기척이 드물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당이 비어 있으므로 멧새들이 지저귀는 것이고, 그 지저귐이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의 멧새 소리는 화자의 적막함 혹은 기다리는 마음을 강조한다. 나아가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있으니 이제 곧 멧새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시간이다. 이 적막한 기다림의 시간에 멧새 소리마저 없다면 그 집은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안과 밖을 이어주는 공간, 그러니까 누군가를 기다리며 화자가 서성이고 있는 저 문턱또한 있으나 마나일 것이다. 멧새 소리는 문턱과 함께 화자와 외부의 소통 가능성을 열어 주는 작은 길이 된다.

시인 백석은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 학교를 거쳐 일본에 유학하고, 이 시를 발표할 당시(1938)에는 함흥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원산보다도 훨씬 북쪽인 동해의 항구 도시 함흥, 그곳에서 섬세한 감성의 젊은 시인이 쓸쓸하게 겨울을 넘기고 있었다. 그가 보는 모든 것, 그가 듣는 모든 것이 시가 되었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라고 썼듯이, 시 속의 명태는 어쩌면 백석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시인의 다른 모습인 화자는 문턱에 꽁꽁 얼어서 /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을 매달고 있다. 여기서 화자가 다른 데도 아니고 문턱에 얼어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자가 문턱을 오래 서성였다는 뜻일 텐데,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까지 달고 있으니 누군가를 기다리며 오래 속울음을 울고도 남았을 법하다. 하지만 화자가 그렇게 기다리는 사람은 겨우내 오지 않고 있다. 겨울 볕이 더욱 서러웁게차가운 까닭이다.

백석의 시는 그가 살았던 시대와 연결 지을 때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식민지에 태어나서 조국과 고향을 떠나 접하는 삶이 얼마나 외롭고 고되었으랴. 더욱이 이 시를 쓸 즈음에는 일본의 억압과 수탈이 점점 심해져서 망국민의 한이 끝없이 깊어질 때다. 바짝 마른 데다 꽁꽁 언 채 처마 끝에 매달려서 눈물 같은 고드름을 달고 있는 명태는 암울한 우리 민족의 분신이기도 한 것이다.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가 되어 꼬리가 아니라 가슴에고드름을 단 채 우리네 슬픈 이웃들은 무엇을 기다린 것일까.

이처럼 이 시를 읽는 재미는 명태의 시각적 이미지와 멧새 소리의 청각적인 이미지를 겹쳐 읽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의 사이사이에 시인의 삶이, 역사 속의 소리 없는 울림들이 스며든다. 하지만 제일 커다란 울림은 독자 스스로가 채워 넣는 각자의 이야기에서 완성된다. 어떤 독자는 어릴 적 건넛마을 혹은 장에 가신 엄마를 기다렸던 기억을 떠올리고, 어떤 독자는 온다고 하고 오지 않는 애인이나 어떤 이유로든 헤어진 그 누군가를 채워 넣어 읽을 것이다. 또 어떤 독자는 새로운 내일을, 따뜻한 봄을 채워 넣어 읽을 수도 있다. 시 읽기란 작품에서 출발하여 시간과 공간의 화살을 타고 깊은 우주로 날아갔다가 다시 자기 안으로 돌아오는 아름다운 여정이기 때문이다.

 
 
 

<핵심정리>

갈래: 자유시, 서정시

운율: 내재율

성격: 감각적, 비유적, 일상적

구성

1   2~4   5   6~8
처마 끝에 명태를 말리고 있음. 명태가 꽁꽁 얼어 있음. 날이 저물었음. 도 명태처럼 꽁꽁 얼어 있음.

제재: 명태

주제: 암울한 현실에서 느끼는 삶의  적막감과 희망에 대한 기다림

특징: 시가 창작되던 당시에 일상적으로 볼 수 있었던 삶의 풍경을 시각적 심상으로 그려 냄.

            ② 시의 화자의 모습을 명태로 형상화함.

            ③ 제목인 ‘멧새 소리'를 통해 다양한 의미와 정서 표현을 가능하게 함.

 
728x90
반응형

'시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향수(정지용) 감상 및 정리  (3) 2023.01.21
마종하 '딸을 위한 시'  (2) 2023.01.18
<시> 봄(이성부)  (2) 2023.01.15
<시> 묵화(김종삼)  (1) 2023.01.14
<시 감상> 파도(강지혜)  (1) 2023.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