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정지용) 감상 및 정리

2023. 1. 21. 12:11시 감상

728x90
반응형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감상>

정지용 시 <향수>는 ‘전설’을 빼고는 모두 토박이말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 자신이 의도적으로 ‘흙에서 자란’ 토박이말만을 골라 쓴 것으로서 토착어의 배타적 조직이 그 특징이다. 1920년대 일제 한자어를 마구잡이로 빌려 쓰던 시절에 이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의 모든 시가 이렇게 토착어의 배타적 조직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고 그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주류 사회에서 소홀히 되고 배제된 토박이말을 찾아내어 그것을 시어로서 조직하는 일을 선도했을 뿐 아니라 시적 유효성을 보여 주면서 결과적으로 부족 방언의 순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시가 언어로 빚어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 시가 우리말로 빚어진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통찰하고 방법적으로 자각한 시인은 많지 않았다. 소월 시에서는 직관적 통찰이 보이지만 방법적 자각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정지용에 와서 방법적 자각과 시범적 실천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한국 시의 아버지이다.

- 유종호, ‘김소월 <진달래꽃>, 정지용 <시 전집>’ 강의록,

 

<작가 소개>

정지용(1902~1950) 시인. 충청북도 옥천(沃川) 출신. 고향에서 초등 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다녔으며,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1930년대에는 《시문학》, 《구인회》 동인으로 참가하여 토박이말과 감각적 심상을 사용한 시들을 발표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에는 이병기, 이태준 등과 함께 문예지 《문장》을 만들어 전통주의적 경향의 시를 발표하였다. 그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와 심상을 구사하여 1930년대 모더니즘과 이미지즘을 대표하는 시를 썼다고 평가받는다. 저서에 시집 《정지용 시집》(1935), 《백록담》(1941)과 산문집 《산문》(1949)이 있다.

<작품 개관>
갈래 자유시, 서정시 성격 향토적, 묘사적, 감각적
제재 고향의 추억 주제 고향에 대한 그리움
특징 감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대상을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토속적인 소재와 향토적인 정감을 느낄 수 있는 시어를 사용하고 있다.
후렴구가 반복되는 병렬식 구조로 구성하고 있다.
해제 이 시는 가난하지만 평화로웠던 고향의 모습을 회상하며, 간절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각 연은 다양한 감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고향의 풍경을 그리고 있으며, 후렴구에는 고향에 대한 화자의 그리움이 집약적으로 담겨있다.
<구성>

<후렴구의 기능>

이 시는 고향의 정경을 그려 낸 다섯 개의 연이 병렬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과 연 사이에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후렴구가 반복되고 있다.

  ① 각 연의 시상을 매듭지어 연과 연 사이를 구분함.

  ② 고향의 정경에 대한 화자의 정서를 집약적으로 제시함.

  ③ 동일한 시구를 반복하여 운율을 형성함.

  ④ 고향에 대한 화자의 그리움을 심화함.

  ⑤ 시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함.

 

<향수>에 드러난 고향의 이미지

 

고향을 드러내는 소재 고향의 모습
1 실개천, 얼룩백이 황소 가난하고 고단한
삶이지만
평화롭고 정겨움.
2 질화로, 늙으신 아버지
3 , 파아란 하늘, 풀섶 이슬
4 어린 누이, 이삭을 줍는 아내
5 서리 까마귀, 초라한 지붕
 
 <심상>
감각적 심상 표현
시각적 심상 얼룩백이 황소, 파아란 하늘빛,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성근 별, 흐릿한 불빛
청각적 심상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도란도란거리는
촉각적 심상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공감각적 심상 금빛 게으른 울음,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효과 고향의 모습을 생생하고 다채롭게 형상화함.
고향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그리움을 불러일으킴.
 
<표현 방법>
 
시어나 시구 표현 방법 효과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 의인법 실개천의 물소리가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정겹게 느껴짐.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설의법 잊힐 리 없다.’는 의미가 강조되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느껴짐.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 의인법
직유법
밤물결이 춤을 춘다고 비유함으로써 일렁이는 물결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함.
어린 누이의 검은 귀밑머리가 날리는 모습을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에 비유하여 아름답고 신비로운 느낌을 줌.
 

 

 

 

 

728x90
반응형

'시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처가 더 꽃이다(유안진) 감상 및 정리  (2) 2023.02.01
박남수, 아침 이미지1  (5) 2023.01.24
마종하 '딸을 위한 시'  (2) 2023.01.18
멧새 소리(백석)  (2) 2023.01.17
<시> 봄(이성부)  (2) 2023.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