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수라' 감상 및 정리

2023. 8. 20. 20:37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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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修羅)

백석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감상

백석의 시는 잔잔한 슬픔의 정서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 읽은 '멧새 소리'에서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쓸쓸함과 적막함의 애잔한 정서에 가슴이 먹먹했는데  '수라'에도 슬픔과 안타까움이 바탕에 깔려 있다. '수라' 는 말하는 이의 행동으로 이별하게 된 거미 가족이 서로를 찾는 모습을 통해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체인 가족이 붕괴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무심코 한 행동이 거미 가족의 비극을 가져온 것을 보며 인간 중심의 관점이 아닌 작은 생물의 입장도 생각해 보게 하는 슬프지만 따뜻한 시이다.

이 시는 1930년대 우리 민족이 겪은 비극적 상황을 거미 일가에게 일어난 사건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정리

갈래: 현대 시, 자유시, 서정시

성격: 서사적, 상징적

운율: 내재율

소재: 거미 가족의 헤어짐

주제: 가족의 붕괴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특징:

시적 대상인 거미를 의인화하여 표현함.

시상의 전개에 따라 시적 정서가 심화됨.

  • 구성
1 방에 들어온 새끼 거미를 밖으로 무심히 쓸어 버림.
2 새끼 거미를 만나라고 큰 거미를 문밖으로 버리며 서러워함.
3 무척 작은 새끼 거미 역시 가족을 만나라고 문밖으로 버리며 슬퍼함.

 

  • 거미 가족에 대한 말하는 이의 행동과 정서
대상 행동 말하는 이의 정서
‘거미 새끼’  문밖으로 쓸어 버림. 아무 생각이 없음

‘큰 거미’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문밖으로 버림.  가슴이 짜릿함.(서러워함)
‘무척 작은 새끼 거미’ 보드라운 종이에 받아 문밖으로 버림.  가슴이 메이는 듯함.(서러워함, 슬퍼함)

 

  •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한 제목 ‘수라’의 의미
헤어져 서로를 찾고 있는 거미 가족 = 가족과 헤어지게 된 우리 민족

이 시는 일제 강점기에 쓰인 것으로, 당시 우리 민족의 가족 공동체 역시 거미 가족처럼 해체되는 비극을 겪고 있었다. ‘수라는 혼란 상태에 빠진 곳이나 그러한 상태 자체를 비유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제목은 흩어진 거미 가족의 상태나 일제 강점기에 가족과 해체되는 아픔을 겪는 우리 민족의 상태가 모두 수라와 같음을 나타낸 것이다.

 

  • 말하는 이의 행동에 담긴 시인의 소망
거미 가족의 헤어짐
공동체적 삶의 붕괴
=
거미 가족의 재회
공동체적 삶의 회복

말하는 이는 거미 가족이 헤어진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껴 거미들을 모두 문밖으로 내보내고, 그들이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 시에서 뿔뿔이 흩어진 거미 가족은 가족 공동체가 붕괴된 당시의 우리 민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말하는 이가 거미 가족이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공동체적 삶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시인의 소망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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