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새로운 엘리엇(그레이엄 가드너)

2023. 1. 22. 08:30책 서평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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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를 끌며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과연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과장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거기에 나오는 사례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이라 한다.
예전에 읽었던 그레이엄 가드너의 <새로운 앨리엇>도 학교 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다른 나라의 예전 학교폭력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정말 무겁다.

1. 책 소개 및 줄거리

'새로운 앨리엇'은 영국의 작가 그레이엄 가드너의 데뷔작으로 전 세계 10개국에서 번역된 학교폭력을 다룬 소설이다.

옛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다가 전학을 간 중학교 3학년 엘리엇은, 새 학교에 잠시 희망을 가지기도 했으나 이곳 역시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왕따 신세가 될 수는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엘리엇은 배웠다. 눈에 띄지 않으려는 노력만 하다가는 마침내 패배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패거리들은 늘 있기 마련이다. 엘리엇은 그저 눈에 띄지 않기만을 바라지 않았다. 스스로가 강구해 낸 생존 법칙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실천하고 주위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는 엘리엇.

하지만 엘리엇은 수호자(폭력 집단)의 우두머리인 리처드에게 차기 우두머리 자리를 제안받게 된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물리친다면 그것 또한 피해자 리스트에 오르는 원인이 될 수 있기에 엘리엇은 그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폭력을 합리화하는 그룹 속에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현장에 있으면서 앨리엇은 갈등하게 된다. 

 

"통제의 목적은 통제이고, 힘을 갖고자 하는 목적은 힘을 갖는 것이라고. 공포를 사용하는 목적은 공포를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수호자의 권력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야."

조지 오웰, 『1984』

리처드는 말한다.

"수호자들이 홀민스터를 만든게 아니라 홀민스터가 수호자들을 만들었다. 폭력과 처형, 희생자들은 어디든지 존재한다. 모든 수호자들은 단지 그것을 이용할 뿐이야.... 우리가 억지로 시키는 게 아니야. 우리가 일을 꾸미는 것도 아니지.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엘리엇의 여자친구인 루이스는 같은 책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한다.

"1984의 영웅은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었어.. 그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해야 해. 과거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역사를 날조하고, 진실을 숨겨야 하는 거야.... 결국 그는 선택해. 체제에 복종하지 않는 길을 선택해. 신념을 따르고, 위험을 감수하지, 그래서 자유를 얻는 거야........마지막에는 그들이 그를 처형하지.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 그 사람은 자유로웠어. 그게 중요한 거야. 그 사람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어. 남이 시키는 대로 생각한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생각했어. 그를 처형할 때도 그들은 그의 생각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어. 그렇니까 그들은 결코 승리했다고 할 수 없어. 그들은 그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었지"

엘리엇은 1984에 나온 주인공처럼 처형 당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신념을 지킴으로써 자유를 얻는 길을 택한다. 더 이상의 처형을 막기 위해 망설임 없이 교장실문을 두드리며 소설은 끝이 난다.

2. 학교 폭력, 그 잔인한 본능 넘어서기

홀민스터에서는 몇몇 아이들에 의해 행해진 폭력도 커다란 하나의 의례 행위로 모아진다. 일명 수호자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계획되고 진행되는 그 과정들이, 피해자에게는 지옥이 되지만 대다수에게는 기대감 속에서 즐길 거리가 되는 것이다. 베이커의 약점을 잡아 조롱하며 함께 즐기는 체육선생님, 남을 통제하며 권력 자체가 목적이라고 말하는 수호자들, 그리고 처형자로 선택된 학생들과 처형의 상황을 지켜보며 즐기는 많은 학생들은 똑같지는 않지만 닮아있는 도덕 불감증 환자들이다. 그들은 약자의 입장을 알지 못한다.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이들의 행위는 학습되어 대물림되어온 잔인한 본능이 아닐까. 강해야 하고 잘해야 하는 약육강식의 습성을 강조하는 사회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습득된 본능 같은.
폭력을 당하는 약자들도 자기에겐 그런 일을 당할 필연적 약점이 있다고 받아들이며, 자존감이 없는 존재로 체념적인 삶을 살고 있다. 물론 그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개입하려는 부모나 교사의 의지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태생적으로 여리고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사려 깊음이 약자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눈에 띄지 않게 숨으려 하는 모습으로 만들었고, 집요한 처형자들의 표적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엘리엇은 새로운 환경에서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새로운 엘리엇을 만들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아진 자존감을 가지고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전에 본 통합교육 사례가 생각이 났다. 장애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생활하는 비장애 아이들은 장애를 가진 친구를 동정하거나 배려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그냥 그런 특성을 가진 친구로 인식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었다. 강함만을 강조하기보다 여린 것도 인정하는 어른들의 사고 전환과 함께, 이런 분위기의 교육이 어려서부터 이루어져서 모든 아이들이 다양한 존재로 인정받고 ‘나는 그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자기 존중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할 수 있다면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본능인 약자를 향한 폭력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원론적인 생각을 해 본다.

3. 가면 고르기

엘리엇은 학교폭력의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 철저하게 새로운 엘리엇을 만들어간다. 눈에 띄지 않고 좋은 인상을 남겨 괴롭힘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면 말투 하나, 표정 하나까지도 신경 써야 하기에 언제나 그는 긴장해 있다. 격렬하고 예민한 감정에 시달리면서도 겉으로는 무관심한 표정의 가면을 쓰고 있는 엘리엇.

‘예전의 엘리엇’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두 사람의 엘리엇이 있었다. 아버지가 강도에게 습격을 당하기 전의 엘리엇과 그 이후의 엘리엇.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엘리엇’도 한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관계들, 즉 수호자들, 벤, 그리고 식구들과 맺는 관계들은 엘리엇에게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진, 다른 사람이 되기를 요구했다. 여러 명의 엘리엇으로 나뉘어 존재해야 했다. 그리고 각각의 엘리엇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만나지 말아야 했다. 이렇게 분열되어 있는 상태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 엘리엇은 알 수 없었다.(p.182)

분열된 자아 사이에서 고뇌하는 엘리엇은 이후 루이즈를 만나면서 또 다른 감정의 경험을 하며 새롭게 성장해 간다. 수호자로서의 첫 임무가 실행되던 날 교장실 문을 두드리는 그의 용기 있는 선택은 수많은 갈등과 고민 후의 결정이었으므로 결과에 상관없이 그가 성숙했음을 의미한다. 그는 두려움 속에서 드디어 자기의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 난 가면을 쓰고 있는 시간이 많아서 정작 그 안의 내 모습이 어떤 것인지 잊고 있을 때가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쓰는 가면이 몇 개인지 손으로 꼽으면서 그래도 엘리엇처럼 서로 만나면 안 되게 나뉜 가면들을 쓰고 있지 않음에 그나마 조금 위안을 삼아 본다.
융(Carl Gustav Jung)은 정신적인 건강과 평정은 페르소나가 얼마나 잘 채택되었는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쓰고 있을 때 내가 제일 행복했던 가면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지금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가. 우리 아이들의 가면 속 모습은 어떨까.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가면을 쓰게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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