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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시리즈 2편] J.R.R. 톨킨과 C.S. 루이스: 판타지 문학을 만든 우정의 시작

by 빡빡이네 2025.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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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과 루이스가 대화하는 장면
톨킨과 루이스

톨킨과 루이스, 서로 다른 길에서 만난 두 사람

존 로널드 루엘 톨킨(1892~1973)과 클리브 스테이플스 루이스(1898~1963)는 각각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판타지 문학의 거장이다. 톨킨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필로소퍼로, 고대 북유럽 신화와 언어에 깊이 매료되었다. 반면, 루이스는 문학을 전공한 학자로, 아일랜드 출신의 감성적인 이야기꾼이었다. 두 사람은 1926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영어학부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루이스는 무신론자였고, 톨킨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에 초기에는 서로에 대해 약간의 선입견을 가졌다. 루이스는 일기에 톨킨을 “매끄럽고 창백한, 유창한 사람”이라며 “약간 손봐줄 필요가 있다”고 농담조로 적었다. 그러나 공통된 관심사인 신화와 문학은 곧 그들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루이스의 신앙 여정, 톨킨의 결정적 한 수

1926년 만남 이후, 톨킨과 루이스는 고대 북유럽 신화와 언어를 함께 탐구하며 우정을 쌓았다. 특히 톨킨이 주도한 ‘콜비타르(Kolbítar, 아이슬란드어로 “석탄을 깨무는 자”라는 뜻)’라는 고대 노르드어 연구 모임에서 두 사람은 깊은 대화를 나눴다. 당시 무신론자였던 루이스는 신화와 문학에서 느껴지는 초월적 아름다움에 끌렸지만, 기독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1931년 9월, 옥스퍼드의 애디슨 산책로(Addison’s Walk)에서 톨킨, 루이스, 그리고 동료 휴고 다이슨은 밤늦도록 신화와 신앙에 대해 논쟁했다. 톨킨은 루이스에게 “기독교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참된 신화’”라고 주장했다. 이 대화는 루이스의 신앙 전환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고, 그는 곧 영국 국교회 신자가 되었다. 톨킨의 격려는 루이스가 나니아 연대기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같은 기독교적 주제를 담은 작품을 쓰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나니아연대기 영화 포스터
나니아연대기 영화 포스터

 

서로를 키운 우정: 잉클링스와 문학의 콜라보

톨킨과 루이스의 우정은 단순한 개인적 유대를 넘어, 문학적 협력으로 꽃피었다. 1930년대 초, 두 사람은 옥스퍼드에서 ‘잉클링스(Inklings)’라는 비공식 문학 모임을 시작했다. 이 모임은 매주 화요일 옥스퍼드의 이글 앤드 차일드(The Eagle and Child) 펍, 일명 ‘버드 앤드 베이비’에서 열렸으며, 회원들은 미완성 원고를 낭독하고 서로 비평했다. 톨킨은 반지의 제왕과 실마릴리온의 초안을,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와 우주 3부작의 원고를 이 자리에서 공유했다. 루이스는 톨킨의 느리고 완벽주의적인 글쓰기 스타일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그의 방대한 세계관에 깊이 감탄하며 완성을 독려했다. 반대로, 톨킨은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가 지나치게 직설적인 기독교 상징을 담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그 작품의 대중적 매력을 인정했다.

잉클링스 모임은 단순한 비평의 장을 넘어, 두 사람의 창작에 실질적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루이스는 우주 3부작의 주인공 랜섬 박사를 톨킨을 모델로 삼아 언어학자이자 신화 애호가로 설정했다. 톨킨은 루이스의 웅변적인 목소리를 본따 반지의 제왕의 트리비어드(Treebeard) 캐릭터를 창조했다. 두 사람은 1935년 문학적 내기를 하기도 했다. 톨킨은 시간 여행 소설을, 루이스는 우주 여행 소설을 쓰기로 약속했으며, 이로 인해 루이스의 우주 3부작이 탄생했다. 톨킨의 시간 여행 소설 *잃어버린 길(The Lost Road)*은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그의 중간계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다.

두 사람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과 부모의 조기 사망이라는 공통된 아픔을 공유하며, 신화와 이야기에서 위안을 찾았다. 잉클링스 모임은 이들의 트라우마를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공간이었다. 톨킨은 루이스의 빠른 글쓰기와 대중적 접근 방식에서 자극을 받았고, 루이스는 톨킨의 치밀한 세계관 구축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1939년 찰스 윌리엄스가 잉클링스에 합류하면서 그룹의 역학이 변화했고, 톨킨은 윌리엄스와 루이스의 친밀한 관계에 다소 소외감을 느꼈다. 또한, 루이스의 1956년 이혼녀 조이 데이비드먼과의 결혼은 톨킨의 가톨릭 신앙과 충돌하며 우정에 균열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톨킨은 루이스를 “1927년부터 1940년까지 가장 가까운 친구”로 여겼고, 그의 문학적 기여를 높이 평가했다.

반지의 제왕 영화 포스터

 

마지막까지 남은 우정의 흔적

1963년 11월 22일, 루이스가 신부전으로 사망했을 때, 톨킨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딸 프리실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루이스의 죽음을 “뿌리 근처를 내리친 도끼”라고 표현했다. 두 사람의 우정은 말년에 다소 소원해졌지만, 톨킨은 루이스의 죽음 후에도 그와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했다. 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톨킨에게 헌정하며 그의 신앙 여정에 미친 영향을 기렸고,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잉클링스에 헌정하며 루이스의 격려를 영원히 남겼다. 두 사람의 우정은 중간계와 나니아라는 두 세계를 탄생시켰으며, 오늘날까지 판타지 문학의 전설로 남아 있다.

 

마무리: 우정 시리즈, 계속됩니다!

J.R.R. 톨킨과 C.S. 루이스의 우정은 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신앙, 신화에 대한 열정, 그리고 서로에 대한 격려는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라는 불朽의 작품을 낳았다. 이 우정은 상호 신뢰와 비판이 창작에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우정 시리즈는 앞으로도 역사 속 감동적인 우정 이야기를 계속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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