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우리들의 비밀 놀이 연구소
아이들이 썼던 글을 모아 여기에 남기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큰 아이의 독후감도 공유해 본다. 2022 놀이 가치 공감 독후감 쓰기 대회에서 전주시장이 주는 우수상을 받았다.
다시 생각하는 진짜 놀이의 가치
우리는 흔히 ‘공부’의 반대말을 ‘놀이’로 생각하거나 ‘일’의 반대말도 ‘놀이’로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공부나 일은 해야만 하는 것으로 권장하지만 놀이는 많이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그만 놀고 공부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고 우리는 그 말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조유나의 소설 ‘우리들의 비밀 놀이 연구소’는 집과 학원을 오가며 성적을 올려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만을 강조하는 학교의 문화 속에서 보다 즐겁게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게 하는 놀이의 가치를 알려주는 참 좋은 소설이다.
주인공인 명수는 에너지가 넘치고 자기 과시적 성향이 있는 평범한 중학생이다. 1학년 축제 때 록밴드를 흉내 내며 기타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려다가 아버지가 아끼던 기타를 망가뜨린 전적이 있고, 2학년이 되자 좋아하는 여학생 때문에 들게 된 영화 감상 동아리에서 멋진 영화감독의 꿈을 갖게 되지만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카메라를 사야 한다는 조금은 허세가 있는 남학생이다. 우연히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고 ‘심오한 연구소’에서 인류학을 공부하는 박사님의 연구를 돕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첫 번째 과제는 청소년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하여 적는 거였다. 명수는 노는 친구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그들을 부정적으로 보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노는 부류에 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박사님은 놀이를 통해 배우는 것도 많고 즐거운 경험도 하는 거라며 놀이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알려준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일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공장을 통한 생산이 일반화되면서 사람들을 시간에 맞춰 통제해야 했고 이를 위해 공장 규칙을 정하고 금욕과 절제를 강조하며 노는 것 자체를 금지시키다 보니 노는 것이 죄 같고, 놀고 있으면 불안한 생각이 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게으른 것이고 무엇이든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나의 강박도 여기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을 내려놓고 욕심을 내려놓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내 삶을 즐기며 여유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과제는 놀면서 생기는 친구들의 고민들을 직접 듣고 사례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명수는 친구인 형수와 박사님의 딸 셜리와 함께 대자보를 붙였고 이메일로 고민을 받게 된다. 놀 시간 없이 공부만 했지만 늘 2등이어서 1등이 밉다는 고민, 래퍼가 되고 싶지만 음악을 하다가 가난뱅이가 될까 두렵다는 고민, 라이트 노벨을 좋아하지만 대놓고 알릴 수도 없고 방구석에서 잉여의 삶을 살고 있다는 고민, 돈이 없어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다는 고민, 의도적으로 남을 조롱하는 그림을 그리는 친구에 대한 고민...
명수, 형수, 셜리는 고민을 수집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발적으로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자신의 경험과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종합하여 친구의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상담하고 조언을 해주게 된다. 나는 돈을 내지 않고는 놀기가 힘들게 되어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에 공감이 되었다. 원래 놀이는 참여자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세계였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들이 놀이의 참여자가 아니라 놀이 산업의 소비자가 되기를 강요한다. 장난감 없이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놀 수 있는데,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도 장난감을 사줘야 한다고 부추기는 광고도 여기에 해당될 것 같다. 광고의 거짓 욕망에 휘둘리지 말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명수도 영화 감독이 되기 위해서 카메라를 먼저 사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자기 성찰 후에는 지금 가진 스마트폰으로도 영화를 찍을 수 있고 어떤 내용을 찍을 건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명수와 친구들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놀이공작단’이란 동아리를 조직하여 학생 회의에서 승인을 받고 자기주도적인 학교 생활을 한다. 청소년기에는 놀이를 통해 스스로 경험하면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것을 찾아내고 잠재된 가능성을 깨달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잘 놀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동아리 선생님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노동만 강요하고 놀지 못하게 하는 사회에서 뒤틀린 나치 같은 왜곡된 놀이가 나온 것처럼 놀이 자체를 억누르다 보면 숨어서 남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나쁜 놀이도 나올 수 있다. 사람들이 비겁하게 숨어서 남을 괴롭히는 나쁜 놀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오히려 건전하게 노는 문화를 만들어주고 랩배틀같이 공개적으로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하여 오해와 갈등을 없앨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우리들의 비밀 놀이 연구소’는 마땅히 놀 문화가 없는 청소년들에게 공부만 강요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즐겁게 맘껏 놀 수 있는 판을 짜줄 필요가 있다고 독자를 설득한다. 내적 동기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놀이는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며 과정 자체를 즐기는 가운데 창의성과 사회성 등 다양한 배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자신들의 경험으로 이리저리 조언을 하며 놀이를 끌어가는 것보다는 학생들이 자발적이고 주도적으로 놀이 안에서의 안전한 실패를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나 마을공동체에서는 자율 동아리가 활성화되도록 더 많이 지지해 줄 필요가 있다.
예전에 놀이에 대한 EBS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아이에게 주도성을 주지 않고 부모가 교육적 성과를 위해 개입하고 이끌어가는 놀이는 진짜 놀이가 아니라 가짜 놀이라는 거였다. 아이가 주도성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진짜 놀이 속에서 아이는 즐거움을 느끼고 창의적인 배움이 일어난다고 했다. 억지로 공부만 강요해서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소설 속에서 명수와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동아리를 조직하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배우고 공부하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진짜 놀이의 경험을 학생들에게 주어야 한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처럼 즐기는 사람이 많은 학교와 사회가 되기를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