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결혼과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마가복음 10:1~12)
빡빡이네
2023. 6. 21. 20:24
예음교회 김정용 목사님(2023.6.18. 설교)
(막 10:1) |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마19:1, 요10:40 |
(막 10:2) |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
(막 10:3) |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신24:1 |
(막 10:4) | 이르되 ㄱ)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
(막 10:5)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마19:8 |
(막 10:6) |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
(막 10:7) |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
(막 10:8) |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
(막 10:9) |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
(막 10:10) |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
(막 10:12) |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
예수님은 이혼은 하나님이 짝지어준 것을 사람이 인위적으로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이혼을 할 수 없다는 입장에 서 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이혼은 일반적이었고 지금도 이혼을 할 만한 많은 이유들이 있다. 결혼을 할 때는 결혼을 해야만 할 이유들만 보고 결혼을 하지만 살다보면 함께 살 수 없는 이유들이 더 많이 보인다. 하지만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생각해보며 말씀의 의미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은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도발적인 질문을 한다. 대단히 남성 중심적인 이 질문은 예수님을 위험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세례요한도 헤롯왕이 자신의 동생의 아내를 이혼시키고 자기 아내로 삼은 것을 비판한 것 때문에 결국 죽음을 당했었다.)
예수님은 "모세가 뭐라고 명하였느냐(구약의 율법)"라고 묻지만 바리새인은 '이혼증서를 써 주고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라고 대답을 한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번짓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신명기 24장 1절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바리새인은 모세 율법을 이혼의 근거로 삼았으나 이는 이혼을 해야한다는 원칙을 말한 명령이 아니라 이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구제책으로 이렇게 할 수 있다고 허용한 것이다. 모세는 이혼 당하는 당사자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함부로 이혼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의 '수치되는 일'의 의미는 '외도'를 의미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수치' 에 '음식을 망친 것'을 포함하기도 하고 '기뻐하지 않으면'의 의미를 따져 기분에 의해 결혼을 파기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 날 우리가 결혼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세는 아내를 보호하고 이혼이 남용되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바리새인은 그 반대의 용도로 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은 이혼에 대해 말하지만 예수님은 결혼에 대해 말씀하시며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 즉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 안에서 이를 설명하신다. 창세기 2장 22~25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결혼에는 영적인 창조의 원리가 있다. 둘이지만 하나로 사는 것. 둘이 하나가 되기 위해 애를 쓰는 것. 서로에게 맞추어 가며 좋은 것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이다. 하나님은 남성의 부족함을 알고 여성을 통해 이를 채우신다. 또 여성의 약함을 아시고 남성을 통해 보호하게 하신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다는 의미는 단점과 모자람을 알지만 이를 이해하고 참아가는 것이다. 결혼의 원리는 너의 모자람과 단점 때문에 결혼을 지속할 수 없다는 이혼의 원리와는 다르다. 단점과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너를 보내주셨다고 믿는 것이다.
결혼을 하는 것은 사랑을 하기 때문이지만(원인 중심) 또한 사랑하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다(결과 중심). 결혼했기 때문에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마가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맥락에서 이 주제를 말하고 있다. 즉 결혼 생활과 가정 생활도 제자들의 삶의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은 가정에서의 모든 일에도 해당이 된다. 이는 매일의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원리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내 배우자를 예수님이 우리를 대하신 것처럼 보고 있는가? 그의 약점을 품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또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성경적이지 않다고 정죄하는 표현을 하지 말자. 그들의 자세한 사연을 알지 못하면서 판단하지 말자. 그들에게 이해의 버팀목이 되어주자.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도 천국의 기준과 원리로 사는 주님의 제자들이다. 지옥 같은 세상에서도 천국의 원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주자.
적용
밖에서는 호인이면서 집에서는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다 풀고 있지 않았나. 내 가정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 내가 해야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자와 아이들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혼내기보다 오래참음으로 용납할 수 있는 내가 되어 보자.